3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고 30년이 아닌 3년 전인가? 착각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귀에 아직도 익숙하고 궁금한 사건이 있습니다.
일명 개구리소년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으로 알려진 5명의 초등학생 실종사건입니다.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개구리소년사건에 대해 정리해보았습니다.
<언제 어디서 일어난 일이야?>
개구리 소년 사건은 1991년 3월 26일에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살던 다섯 명의 초등학교 학생이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실종된 사건을 말합니다.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는 말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왜곡된 것이 초기에 널리 퍼지면서 "개구리 소년"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는데요.
사건 발생일인 1991년 3월 26일은 5·16 군사 정변 이후 중단된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하여 기초의회 의원을 뽑는 시·군·구의회 의원 선거일로 임시 공휴일이어서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다섯 명의 초등학생은 누구야?>
사실 이 사건은 다섯 명이 아닌 여섯 명의 초등학생이 주인공인 사건이고 유일한 생존자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김태룡은 나머지 다섯 명과 함께 도룡뇽 알을 주우러 가려고 했지만 그의 어머니께서 너무 멀리 나가서 놀지 말라고 당부한 게 있어 산까지 아이들과 함께 가지 않고 중간에 집으로 귀가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실종에 이어 사망사건으로 확장되었는데 다섯 명의 아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철원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조호연 (당시 초등학교 5학년)
●김영규 (당시 초등학교 4학년)
●박찬인 (당시 초등학교 3학년)
●김종식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어떻게 사건이 유명해지게 된 거야?>
일단 다섯 명의 초등학생이 한날한시에 실종되었다는 자체가 국가적으로 알려질 만한 사건이고 사건 발생 2년 후인 1993년에는 KBS 1TV의 사건 25시와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심층적으로 방영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공중전화 카드, 엽서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어린이 만화 비디오테이프 등까지 대대적으로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남녀노소 대부분이 이 사건에 대해 인지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정부는 경찰과 군인 등을 35만 명 투입하여 현장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며 이렇게 대대적으로 인원이 동원된 사건은 드물었기 때문에 그만큼 큰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개구리소년사건은 2011년 이규만감독의 '아이들' 이라는 영화로 재해석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건의 결론이 뭐야?>
일단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이었는데 뚜렷한 성과 없이 미제 사건으로 묻히는 듯하다가 사건 발생 11년 6개월만인 2002년 9월 26일에 성산고등학교 신축공사장 뒤쪽의 와룡산 중턱에서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끝내 아이들의 사망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2006년 3월 25일 24시에 공소시효 15년이 만료되면서 미제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하지만 공소시효 만료 이후에도 범인을 찾기 위하여 7명의 형사들이 개구리 소년 사건을 담당하는 대구 성서 경찰서에서 전담팀이 구성되어 있죠.
사건 발생 30년째인 2021년 3월 와룡산 선원공원에는 추모비가 세워졌습니다.
대구시는 개구리소년 사건을 계기로 실종 어린이들을 추모하고 안전을 기원하는 '개구리소년 추모 및 어린이 안전 기원비'를 설치했으며 추가 제보가 들어오면 언제든 방대한 조사를 시행할 준비가 되어있다며 개구리소년사건에 대한 해결의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게 끝이야?>
몇 가지의 아쉬운 점? 이 있는데 2002년 9월 26일에 와룡산에서 도토리를 줍던 한 시민이 유골을 발견하였는데 유골들이 한데 엉켜 있었고, 현장에 구덩이의 흔적이 없는 점으로 보아 경찰은 어린이들이 추운 날씨에 길을 잃고 헤매다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가 체온이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유골 감식을 맡은 경북대 법의학팀은 두개골 손상 흔적 등을 근거로 아이들이 타살되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아이들의 유골을 발굴할 때도 유골을 분석하여 사인을 밝혀낼 법의학자의 도움 없이 성급하게 작업을 진행하여 현장을 훼손하는 등 실종과 사망에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놓쳤다는 비난도 받았다고 하네요.
또 하나의 설이 있습니다. 대구의 한 구두닦이가 2002년 9월 28일 대구경찰청에 한 제보가 아직까지 찝찝하게 남아있습니다. 그 내용은 "2002년 7월에 30∼35세의 남자 1명이 구두를 닦으면서, ‘군 생활 당시 어린이 5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는 말을 했다" 라는 내용이다. 이는 개구리소년 사건과 흡사한 부분이 있어 조사에 들어갔지만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군부대에서 사격은 적어도 10∼20명이 단체로 실시하고 있다”면서 “더군다나 이들 인원이 오발에 의해 사고가 났다면 10여 년 동안 그 사실이 묻혀 있을 수 있겠느냐”며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묻히기도 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큰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도롱뇽사건. 일명 개구리소년사건.
그 아이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았으며 왜 죽어야만 했을까요.
또한 이런 사건이 다시는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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